'셸위 댄스'라는 영화가 있다. 아니, '셰르 위 단수'가 더 정확할지도... 중년의 샐러리맨이 사교댄스(볼룸댄스)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주인공에게 처음 댄스를 가르치는 할머니 선생님이 어린시절에 본 '왕과 나'라는 영화를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꽤 오래된 영화지만 제목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도서관 DVD코너에서 눈에 띄기에 빌려다 봤다.
The King and I는 시암 왕국(태국, 즉 타일랜드의 옛 이름)이 배경이다. 사실 나는 태국에 별로 관심을 가진적이 없는데, 유명한 휴양지가 있고 불교의 나라이고... 수도가 방콕인지 확실하게 알게된 건 태국인 친구를 사귄 후다.
태국 뿐 아니라 우리가 '동남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에는 정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한국하고 인도 사이에 어느 나라가 있고 순서는 어떤지 거의 감을 못 잡을 정도였으니까.
소위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19세기 유럽열강의 식민지였는데, 인도는 영국/베트남은 프랑스/필리핀은 미국, 스페인, 일본 ...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오로지 태국이란 나라만 피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시아에서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가 일본, 중국말고 또 있다니! 일본이야 자기 스스로가 식민지배자였으니 그렇다치고, 중국은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지간한 식민지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수도가 함락되고, 영토를 떼주고, 이권을 뺏겼잖아)
그런데 태국이?
태국이 식민화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서구열강의 '완충지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완충지대가 되고싶다고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 않은가? 당시 역사를 모르더라도 그 험난한 시기에 어지간한 외교력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이란 걸 알 수 있다.
일본 영화 얘기를 하다가 제국주의까지 흘러왔는데, '왕과 나'의 실제 모델인 태국의 라마4세 혹은 The King Mongkut가 혼란한 시기에 태국을 열강으로부터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태국어로 그의 이름은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มินทรมหาจุฬาลงกรณ์ฯ พระจุลจอมเกล้าเจ้าอยู่หัว이라는데 ... I have no idea)
사실 '왕과 나'에 그려진 그는 사뭇 희화적이다. 주인공의 캐릭터만 그러하랴, 당시 서양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동영을 야만으로 그리는 시각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왕과 나'가 담고 있는 메세지가 일부 '야만인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편하다.
왕자/공주 그리고 왕비들에게 영어와 유럽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영국인 여교사를 초청한 왕은 영어로 말을 하고 좀 우스꽝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다 결국 여교사 안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상사병으로 죽어간다. ... 사실 좀 황당한 얘기잖아.
실제로 King Mongkut은 말라리아로 죽었다. 천문학이 취미였는데 일식을 관측하러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일식이 일어나는 날짜와 장소는 그 스스로 계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인 여교사를 고용해 왕족들을 교육한 건 사실이다. 그 스스로가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왕위를 이은 라마5세는 태국돈 100바트에 얼굴이 그려졌는데, 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각종 개혁으로 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태국이 식민지화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왕자를 유럽으로 유학보낸 최초의 왕이었는데, 아버지인 라마4세의 교육이 끼친 영향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라마 4, 5, 6세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혼란한 국제정세에서 비교적 자국을 잘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비교해서 말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일제치하가 되기까지, 그렇게 되지 않을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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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7 23:59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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