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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위정자들의 실정에 하늘이 노하셨는지 대낮에 하늘이 어두워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더라. 나도 전능하신 신의 노여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팠으나, 이 동네에선 일식현상을 볼 수가 없었다. 몇 일 지났지만 Stellarium으로 하늘의 노하심을 재현해볼 수 있으니 이것이 진정 IT세상의 편리함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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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영어이야기' 이제 볼일 한두 번 더 보면 끝난다. Sunday, Monday, Tuesday .. 요일 순서대로 썰을 풀어내는 책이라 읽다보니 수금지화목토천혜명 .. 이런 것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문득, 샛별이 금성이고 이게 비너스Venus인 건 알겠는데 다른 건? 눈으로 볼 수는 있는거야? 궁금해졌다. 즉시 검색-
오늘의 노획물은 스텔라리움Stellarium이란 자유 프로그램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지금 서울하늘 위의 별들이다. 물론 해가 떠 있으니까 안 보이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목성 토성 이런것도 지구에서 볼 수 있다는거 몰랐다. 수많은 행성들 중에 그래도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것들이니 지식이 아닌 상식으로 생각을 해도 보이겠다 싶기는 하지만,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던거지.....
어릴적 구기동 집 마당에 서면 은하수Milky Way를 볼 수 있었다. 지금 서울의 하늘은? 먼지 그리고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별을 거의 볼 수 없지 않은가? (그래, 하늘에 대한 내 무식과 무관심에 대한 궤변이다;;)
별에 관한 두 번째의 기억은 대략 스무살 즈음의 태백에서의 밤하늘이다. 어머니의 친구분 부부가 태백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백 자연촌'이란 원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태벽역에서 사륜구동차로 갈아타고 40분을 들어가는 그 곳은 자연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한 철학이었는데, 이를테면 외부에서 온 손님은 인스턴트 등 나쁜 음식으로 오염됐기 때문에 이틀정도 그 집의 화장실에 볼일을 못 본다던가 하는 식의 규칙이 여럿 있었다. (변을 거름으로 쓰기 때문이랬다.)
그 집에서 보낸 첫 밤, 누군지 기억도 안 나는 또래 아이들과 비탈진 지붕의 뻐꾸기창으로 내다본 밤하늘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별과 별 사이는 어릴적 검정 크레파스로 칠해 그렸던 밤하늘처럼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 곳은 희미하거나 약간 덜 희미한, 회색의 무언가로 가득차 있었고 내 시력이 허락한다면 그것들은 희미한 무언가가 아니라 별로 인식될 수 있는, 별들이었다.
태백에 다녀오기 전인지 후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책에서 '빛 공해'라는 개념을 읽었더랬다. 밝은 빛이 있는 곳에서는 별을 볼 수 없다고, 그래서 빠르게 도시화되는 한반도에서 별을 볼 수 있는 땅이 좁아지고 있다고. 서울 밤의 야경을 볼때마다, 거짓말 살짝 보태서, 볼때마다 빛 공해라는 단어가 머물다 간다.
세 번째는 2007년 미국으로 가는 대한항공에서 본 하늘이다. 로스앤젤레스로 2월의 이른 휴가를 가는 길이었다. 설 연휴가 끝난 평일 저녁 출발의 비행기는 텅텅 비어 나는 세 자리를 차지하고 가로누워서 행운을 즐기고 있었다. 누운채 잠을 자다 문득 깨서 본 창밖의 별은, 지상에서 보는 것하고는 좀 다른 경험이었다. 신문지 반쪽만한 작은 창이 입김이 흐려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얼굴을 바짝 갖다대면 지평선도 구름도 없는 천상의 경치를 보여주었다. 이런 걸 볼 수 있다니 민항기 파일럿도 꽤 괜찮구나 싶었다. 아폴로니 컬럼비아니 하는 탈것을 타고 우주에 올랐던 이들도 굉장했었겠구나.
까먹을뻔한 또 하나의 별은, 1999년도였을까? 남도의 어느 농촌에서의 기억이다. 추수철 농활로 그 곳을 찾았었는데, 해질녘까지 논에서 걷어낸 알곡포대를 가득 실은 트랙터 바퀴가 논바닥에 빠진 일이 있었다. 트랙터를 몰던 아저씨가 도움을 청하러 간 사이, 운전석의 라디오를 켜고 포대위에 누워있자나 어둑어둑 별들이 하나 둘 하늘을 채워갔다. 남도의 평원에 누우니 하늘말곤 눈에 들어오는 게 없더라. 누구랑 같이 있었는데, 라디오 프로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고 그 날의 느낌만 아스라하다.
무슨 프로그램 소개 하다가 삼천포가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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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위 댄스'라는 영화가 있다. 아니, '셰르 위 단수'가 더 정확할지도... 중년의 샐러리맨이 사교댄스(볼룸댄스)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주인공에게 처음 댄스를 가르치는 할머니 선생님이 어린시절에 본 '왕과 나'라는 영화를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꽤 오래된 영화지만 제목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도서관 DVD코너에서 눈에 띄기에 빌려다 봤다.
The King and I는 시암 왕국(태국, 즉 타일랜드의 옛 이름)이 배경이다. 사실 나는 태국에 별로 관심을 가진적이 없는데, 유명한 휴양지가 있고 불교의 나라이고... 수도가 방콕인지 확실하게 알게된 건 태국인 친구를 사귄 후다.
태국 뿐 아니라 우리가 '동남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에는 정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한국하고 인도 사이에 어느 나라가 있고 순서는 어떤지 거의 감을 못 잡을 정도였으니까.
소위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19세기 유럽열강의 식민지였는데, 인도는 영국/베트남은 프랑스/필리핀은 미국, 스페인, 일본 ...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오로지 태국이란 나라만 피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시아에서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가 일본, 중국말고 또 있다니! 일본이야 자기 스스로가 식민지배자였으니 그렇다치고, 중국은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지간한 식민지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수도가 함락되고, 영토를 떼주고, 이권을 뺏겼잖아)
그런데 태국이?
태국이 식민화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서구열강의 '완충지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완충지대가 되고싶다고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 않은가? 당시 역사를 모르더라도 그 험난한 시기에 어지간한 외교력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이란 걸 알 수 있다.
일본 영화 얘기를 하다가 제국주의까지 흘러왔는데, '왕과 나'의 실제 모델인 태국의 라마4세 혹은 The King Mongkut가 혼란한 시기에 태국을 열강으로부터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태국어로 그의 이름은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มินทรมหาจุฬาลงกรณ์ฯ พระจุลจอมเกล้าเจ้าอยู่หัว이라는데 ... I have no idea)
사실 '왕과 나'에 그려진 그는 사뭇 희화적이다. 주인공의 캐릭터만 그러하랴, 당시 서양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동영을 야만으로 그리는 시각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왕과 나'가 담고 있는 메세지가 일부 '야만인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편하다.
왕자/공주 그리고 왕비들에게 영어와 유럽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영국인 여교사를 초청한 왕은 영어로 말을 하고 좀 우스꽝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다 결국 여교사 안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상사병으로 죽어간다. ... 사실 좀 황당한 얘기잖아.
실제로 King Mongkut은 말라리아로 죽었다. 천문학이 취미였는데 일식을 관측하러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일식이 일어나는 날짜와 장소는 그 스스로 계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인 여교사를 고용해 왕족들을 교육한 건 사실이다. 그 스스로가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왕위를 이은 라마5세는 태국돈 100바트에 얼굴이 그려졌는데, 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각종 개혁으로 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태국이 식민지화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왕자를 유럽으로 유학보낸 최초의 왕이었는데, 아버지인 라마4세의 교육이 끼친 영향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라마 4, 5, 6세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혼란한 국제정세에서 비교적 자국을 잘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비교해서 말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일제치하가 되기까지, 그렇게 되지 않을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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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에서 루크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와 아나킨 스카이워커Anakin Skywalker의 비극적 대립은 전 에피소드를 통틀어 가장 주요한 줄기 중 하나다. 특히 아버지인 루크 스카이워커가 어둠에 잠식되는 과정은 정말 흥미롭다.
요다Yoda를 비롯해 제다이 마스터Jedi Master들은 아나킨에게서 어둠의 씨앗을 보았기 때문에 그를 깊이 믿지 않는다. 재능있고 자신감 넘치는 아나킨은 자신은 능력이 충분한데 마스터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다. 시스Lord Sith는 아나킨을 부추겨 불만이 분노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아나킨은 원래 어둠에 잠식될 운명이었나, 그를 의심하고 걷돌게한 환경이 그를 어둠으로 이끌었나?
파드메Padme 공주와 사랑에 빠진 아나킨, 공주가 목숨을 잃는 악몽에 조바심이 커져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죽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이 그를 어둠과 거래하도록 만들고,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나무라는 파드메를 자기 손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운명을 애초에 걱정한 곳으로 이끄는 역설이다.
#2 실력으로 로마를 장악하고 독재자가 된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저Gaius Julius Caesar는 결국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를 비롯한 여러 원로원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브루투스가 시저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에 보고있는 드라마 로마Rome의 이야기를 따라보면... (물론 이 드라마는 '드라마'다.)
브루투스는 한때 시저에 대항했지만 자기를 죽이지 않고 공직을 맡기기까지 한 시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시저에게 반했던 옛 일 때문에 불안해 하기도 한데, 그가 시저를 배반할거란 소문이 돌자 조급해진다. 시저 역시 소문을 무시할수만은 없으니 브루투스를 먼 지방으로 보내려 한다. 여기에 주변의 설득과 부추김이 더해져 결국 브루투스는 시저의 목숨을 끊는 결정적인 칼날을 휘두른다.
심리적 요소만 봤을 때, 브루투스가 시저에 돌아서는 과정은 아나킨의 그것과 견주어 볼만하다.
#3 생각나는대로 썰을 풀기는 했는데 딱히 결론은 없다. 아들에게 가면이 벗겨진 다쓰 베이더는 늙고 약한 남자였고, 명분있는 배신자 브루투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교훈은 없다. 그냥 그랬다는 얘기다.
p.s 이를테면 주가가 떨어질거란 예측이 나오면 진짜 떨어질 이유가 없더라도 사람들이 주식을 파는 것도 개인에서 집단으로 대상이 확대된 것일 뿐 같은 맥락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걱정을 현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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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허구헌 날 쳐다보던 별날 것 없는 동네 뒷산인데 어느 날 아버지가 예로부터 전해진 이야길 들려준다. 그런 다음부터는 예삿 산으로 보이질 않더라던가. 여행을 가더라도 뭘 알고 가야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봤다 치자. 모나리자가 대한펄프 휴지 브랜드인 줄로만 알고 가는거랑, 하다못해 소설 다빈치코드라도 읽고 가는거랑 느끼는 재미가 얼마나 다르겠나? 그런데 너무 알아서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눈 앞에 있는 걸 오감으로 느끼질 못하고 머릿속에 든 지식을 투영하느라 바쁘다거나, 한 술 더 떠 지식 쌓느라 바빠서 경험 할 기회를 갖지 않는다면 슬픈 일이다. 때론 지식이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하는데, 나처럼 아는 걸 체계화하는게 습성인 사람은 특히 그렇다.
몰라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 하고, 알게 되서 기쁘지만 진실은 좀 괴로운 것 하고 - 이건 매트릭스의 빨간약 파란약하곤 좀 다른 문제다 - 그 사이 어디쯤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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