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전에 말했듯이 요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있다. 아직도 읽냐고? 응;; 애들 읽으라고 쓴 책인데도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읽는게 더딜 뿐더라, 챕터별로 오디오북을 먼저 두어번 듣고 나서 책을 읽어보는 식으로 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딘 속도를 변명하려고 간만에 글을 쓰는 건 아니고,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부딪혀 보니 제국의 언어라는게 이렇구나 하고 깨닫는 바가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일단 서점의 Kids 코너에 가면 작은 곳은 2~3가지, 좀 넓다란 곳은 5~6가지 책을 고를 수 있다. 내가 산 것 처럼 싼 paperback도 있고, 컬러 일러스트가 있는 $50~60짜리도 있다. 아이들을 위해 내용을 줄여놓은 것도 있고 후속편인 Through the Looking Glass 합본도 고를 수 있다.
그런데 뭐, 한국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여러개 고를 수 있으니깐 서점에 여러 판본이 있다는 건 큰 장점이 아닐테다.
내가 Alice를 읽기로 맘먹은 이유 중 하나는 오디오북이다. 예전에 우연히 무료로 다운로드 해 둔 것이 있는데(
http://wiredforbooks.org/alice/), 이게 무료치곤 음질도 좋고 캐릭터마다 성우가 제대로 연기하는 - 효과음도 나온다 - 본격적인 녀석인거다.
오디오북을 구한 뒤에 돈 아끼려고 인터넷에서 소설을 다운로드했다. 오래된 작품이다보니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롭게 전문을 구할 수가 있다. 그런데 단지 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
우선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http://www.gutenberg.org/'라는데가 있다. 서양에서 성서를 대량인쇄해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은 아니고 암튼 유럽 애들이 엄청 자랑스러워하는 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인데, 여기에는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수많은 문서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작업의 결과를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해뒀다.
여기에선 단지 디지털화된 텍스트만 구할 수 있는게 아니다. plain text형태는 물론이고 html이나 pdf 도 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킨들때문에 들썩들썩하는 e-book용 파일형식도 구할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내 iPod touch에도 Stanza라는 e-book프로그램을 깔면 이 파일형식을 활용할 수 있다.)
이쯤에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잠깐 검색해봤을 뿐인데 좋은 오디오북과 전자문서를 아이팟에 담아 아무곳 아무때나 듣고 볼 수 있으니까. (아이팟 사는데만 돈을 썼군. 결국 돈 버는 놈은 따로...)
그런데 인간이란 참,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지 않은가. 오디오북을 듣다보니 영국식 발음인거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만들었다는데 왜 either를 '아이더'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발음으로도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다른 오디오북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소설의 원문도 말이다, 몇 군데만 있는게 아니다. 아까 얘기했던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는 원문 텍스트 뿐 아니라 오디오 파일도 있는데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mp3, ogg 골라서 다운로드 할 수 있고 speex라는 첨 들어보는 포멧에다가 iTunes Audio Book 형식도 있다. 텍스트도 서로 다른 일러스트 버전까지 포함해서 영어 6가지, 독일어 1가지가 있다. 그냥 원문만 구할 수 있는데는 그 외에도 엄청 많다.
이쯤 되니까 내가 부탁 한 적도 없는데 나를 위해 모든게 준비되어 있구나 하는 기분까지 들더라.
물론 대가없이 누구를 돕고자 한 개인들의 작업물이라 음질이 별로라거나(아마 집에있는 싸구려 마이크로 녹음했겠지) 전문 성우처럼 매끈한 목소리가 아닌 것도 있다. 기껏 다운받았는데 모양이 틀어져 보이든 e-book도 있고. 하지만 정말로 전문 성우가 녹음한 오디오북도 있고, 다운받아서 프린트 버튼만 누르면 완벽하게 출력되는 pdf 문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어를 쓰는 인구도 많고, 예전의 식민지배 시절에 뺏어다 곳간에 쌓아둔 게 많아 여유있게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펌질'해놓은 게 아니라 분류하고 잘 정리해서 누구나 쉽게 쓰도록 하는 작업의 방식이나 정성은 그들의 기득권의 결과가 아니라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직지심경이 더 먼저라 자존심만 세울 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활자는 무엇인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단지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이를 중심으로 하나의 시스템을 완성했다는 점 아닐까.